목 차
- 고아원 출신 소녀의 선택
- 불편함을 없앤 사람이 시장을 가졌다
- 렌즈1. 비즈니스 모델 — 향수로 만든 캐시카우
- 렌즈2. 인간 전략 — 자신을 브랜드로 만든 사람
- 렌즈3. 시대 읽기 — 전쟁이 만든 기회를 포착하다
- 렌즈4. 현대 적용 — 지금 당신이 쓸 수 있는 것
- 마무리
고아원 출신 소녀가 럭셔리의 기준을 다시 썼다. {#1}
브랜드는 제품이 아니라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1883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가브리엘 샤넬은 12세에 부모를 잃고
수도원을 전전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배경도, 자본도, 학벌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살아있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패션을 판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팔았기 때문이다.
지금 당신이 브랜드를 만들고 있다면, 이 이야기는 당신의 것이다.
아무것도 없는 사람의 선택 {#2}
수도원에서 나온 스물다섯의 샤넬에게 선택지는 두 가지였다.
평생 재봉 노동자로 살거나, 다른 무언가를 만들거나. 가수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다.
자신의 목소리가 전문 가수가 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20대 초반에 깨달은 샤넬은 재미로 만들던 모자를 사업으로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자본이었다. 창업 자금이 없었다.
그러나 샤넬에게는 하나의 무기가 있었다. 상류층 사교계에서 쌓은 인맥이었다.
1910년 파리 캉봉 거리에 '샤넬 모드'라는 모자 전문점을 열었을 때
개업 자금은 영국인 사업가 아서 카펠의 후원이었다.
많은 이들이 이 사실을 그녀의 약점으로 읽는다. 그러나 다르게 봐야 한다.
자원이 없을 때 관계를 자원으로 전환한 것 — 이것이 샤넬의 첫 번째 전략이었다.
불편함을 없앤 사람이 시장을 가졌다
당시 여성복은 고문에 가까웠다.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이고,
땅에 끌리는 드레스를 입고, 온갖 장식으로 뒤덮인 모자를 썼다.
상류층 여성의 복장은 '얼마나 불편한가'로 지위를 증명하는 시대였다.
샤넬은 그 문법을 정면으로 부쉈다. 코르셋을 없애 여성의 몸을 해방했고
장식이 많은 거추장스러운 의복 대신 편안한 옷으로 여성들의 활동성을 높였다.
당시 패션계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격하였다.
그러나 시장의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혁명이었다.
불편함을 제거하자 수요가 폭발했다. 사람들은 항상 '더 편한 것'을 원한다.
샤넬은 그 원초적 욕구를 가장 먼저 비즈니스로 연결했다.
렌즈1. 비즈니스 모델 — 향수 하나로 제국을 설계하다 {#3}

샤넬의 진짜 수익 구조는 옷이 아니었다.
1921년 샤넬은 패션 하우스로는 최초로 향수 No.5를 공개해
당대 향수 코드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이것은 단순한 신제품 출시가 아니었다.
의류의 한계를 돌파하는 수익 다각화 전략이었다.
옷은 계절을 타고 생산 원가가 높으며 재고 리스크가 크다. 향수는 다르다.
마진이 높고 계절을 타지 않으며 브랜드를 가장 저렴하게 소비할 수 있는 입구 상품이다.
줄이는 것이 수익을 키웠다
훗날 샤넬 경영진은 No.5의 유통 매장 수를
18,000개에서 12,000개로 줄이고 광고에 수백만 달러를 투자했다.
희소성이 올라가자 오히려 판매가 급증했다.
늘리는 것이 아니라 줄이는 것으로 수익을 키운 모델 — 이것은
오늘날 럭셔리 브랜드 전략의 원형이다.
단, 이 전략은 충분한 브랜드 인지도가 형성된 이후에 유효하다.
순서가 틀리면 희소성이 아니라 무명이 된다.
실패 요인: 1939년 약 4,000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으나
열악한 노동 조건에 항의한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충격을 받은
샤넬은 사업을 접고 일시 은퇴했다. 수익 구조를 키우는 것과
조직 내부를 관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외부 전략이 아무리 정교해도 내부가 무너지면 제국은 흔들린다.
렌즈2. 인간 전략 — 자신을 브랜드로 만든 사람 {#4}

샤넬은 제품을 팔기 전에 '코코 샤넬'이라는 캐릭터를 팔았다.
1937년 샤넬은 본인이 직접 광고에 출연하면서
또 한 번 혁신에 도전했다. 오늘날로 치면 창업자가 직접 SNS에 등장하는
퍼스널 브랜딩의 원조다. 피카소, 스트라빈스키, 장 콕토 같은 당대 예술가들과의
살롱에 출연한 샤넬은 사교계의 거물로 자리 잡았다.
이 관계망은 단순한 사교가 아니었다.
브랜드의 격을 예술적 권위와 연결시키는 포지셔닝 전략이었다.
퍼스널 브랜딩의 양날
그러나 이 전략은 치명적 역풍을 맞는다.
샤넬은 나치 점령기에 파리를 떠나지 않고 독일 장교와 교류했다는 이유로
전후 프랑스에서 거센 비난을 받았다. 개인의 행동이 브랜드 전체를 흔들 수 있다는 것 —
퍼스널 브랜딩의 가장 혹독한 교훈을 샤넬은 직접 증명했다.
창업자가 브랜드 그 자체가 될 때, 창업자의 실수도 브랜드의 위기가 된다.
렌즈3. 시대 읽기 — 전쟁이 만든 기회를 포착하다 {#5}

샤넬이 성공한 것은 재능 때문만이 아니었다. 타이밍이었다.
1차 세계대전은 여성의 역할 자체를 바꿨다.
남성들이 전장으로 떠나자 여성들이 공장과 사무실로 나왔다.
치렁치렁한 드레스와 코르셋은 일하는 여성의 몸에 맞지 않았다.
시대가 '편한 옷'을 필요로 하는 순간, 샤넬은 이미 그 옷을 만들고 있었다.
우연이 아니다. 사회 변화를 먼저 읽고 미리 포지셔닝한 결과였다.
트렌드가 아니라 원칙에 베팅했다
1926년 탄생한 리틀 블랙드레스와 1950년대의 트위드 재킷은
오늘날 Z세대까지 열광하는 스타일로 남아 있다.
유행을 따른 것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적 단순함'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트렌드를 쫓는 브랜드는 트렌드와 함께 사라진다.
원칙을 가진 브랜드는 시간을 이긴다.
렌즈4. 현대 적용 — 지금 당신이 쓸 수 있는 것 {#6}

샤넬의 전략을 오늘 비즈니스에 적용하면 어떻게 되는가.
① 제품보다 캐릭터를 먼저 팔아라
샤넬은 옷보다 '코코 샤넬'이라는 인물을 먼저 알렸다.
소규모 사업자라면 브랜드보다 창업자의 스토리가 먼저다.
왜 이 일을 시작했는가, 무엇을 부수려 했는가를 먼저 설계하라.
제품 설명 앞에 이야기가 오는 브랜드가 오래 산다.
지금 당신의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채널 소개란에 '무엇을 파는가'만 있다면
오늘 당장 '왜 시작했는가'를 추가하라.
② 입구 상품으로 브랜드를 먼저 경험시켜라
No.5 향수처럼 — 고가 메인 제품을 사기 전에 브랜드를
저렴하게 체험할 수 있는 입구를 만들어라.
전자책, 뉴스레터, 미니 클래스, 무료 컨설팅 30분. 경험이 먼저 오면 전환이 따라온다.
입구 없는 브랜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고가 제품부터 내미는 것과 같다.
③ 줄이는 것이 가치를 높인다
채널을 늘리고 제품을 늘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샤넬이 유통 매장을 줄여 희소성을 높였듯,
무엇을 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이 브랜드 전략의 핵심이다.
SNS 채널 3개를 겉핥기로 운영하는 것보다 1개를 깊게 파는 것이 신뢰를 만든다.
지금 당신이 하는 일 중 '줄여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이 다음 전략이다.
적용 불가한 것도 명시한다
샤넬의 희소성 전략은 초기 스타트업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렵다.
유통을 줄이려면 먼저 충분한 수요가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인지도 없이 희소성 전략을 쓰면 희소한 브랜드가 아니라
그냥 없는 브랜드가 된다. 순서가 전략이다.
마무리 {#7}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불편함을 없앤 사람이 시장을 얻고,
자신을 이야기로 만든 사람이 시대를 넘는다.
샤넬이 증명한 것은 럭셔리의 문법이 아니다.
자원이 없을 때 무엇에 베팅해야 하는가 — 그 원칙이다.
코코샤넬 스토리 요약 인포그래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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